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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

5월의 아이




 5월을 생각하면 미소가 지어진다. 하늘은 높아 포카리스웨트같기만 하고, 새들은 지저귄다.

동네 어딜가나 초등학교에선 어린이들의 운동회로 활기가 충만하고, 어른들의 가슴팍에는 카네이션이 봉을 틔었다.

그 속에서 나는 태어났고, 황소자리의 끝자락을 차지했다. 하루만 늦었어도라는 마음으로 쌍둥이자리는 아쉬워하려나

엄마와 아빠는 내가 태어났을 때, 어떤 얼굴을 지었을까. 울었을까 웃었을까.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 날 저녁은 나를 기념으로 하여 무엇을 먹었을까. 할머니 할아버지는 날 보러 달려와주셨겠지? 

3살이었을 형은 자신의 동생이 태어난 날인 걸 인지는 하고 있었을까?



 어렸을 적,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초등학교를 보내던 경기도 광주 한 시골에서.

나는 5월에게 여럿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어떤 생일선물을 받을 수 있을까 설레였고.

슈퍼에서 일을 하고 있던 엄마아빠에게 달아줄 카네이션을 정성스레 꽃칼로 자르곤 하였다.

그 중에서도 나는 5월의 아이답게, 운동회를 참 기다렸던 것 같다.



 시골의 운동회답게, 운동회는 모두 아는 얼굴들이 옹기종기 모여 운동회는 이루어졌다.

내게 있어 운동회는 항상 날씨가 맑았으며 새소리가 가득했다. 여느 영화에나 나올 법한 최고의 날씨였다.

교장선생님의 개회식을 시작으로 나는 줄곧 운동장 뒷편을 돌아보곤 했다.

여느 부모님이 그렇듯 우리 엄마 아빠도 점심시간이 될 즈음, 운동회를 찾곤 하였다.

주로 아빠가 먼저 빨간 배달용 시티(그때는 물론 그저 오토바이일 뿐이였다.) 타고선 뒤에서 나를 불렀다.

아빠는 내게 자신이 왔음을 알리곤 한참을 지켜보다,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갔다.

슈퍼를 비울 수 없기 때문에 내게 엄마아빠를 동시에 볼 수는 없었다.

그래도 나는 당시 크게 서운해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점심시간에는 엄마가 도시락을 들고서 운동장을 찾았다.

도시락 통에는 내가 좋아하는 치킨, 떡꼬치 등 고기들이 가득했다. 

나는 친구들을 불러 엄마의 요리를 자랑하며 입 안 한가득 음식을 우물대었다.

내게는 그 순간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운동회에 있어서 가장 두려워하던 시간이 있었는데, 바로 달리기시합이다.

나는 어려서 뚱뚱해 달리기를 유독 못하였다. 순위에 못드는 건 당연하고 심지어 매번 엎어지기 일 수 였다.

한 번은 줄넘기를 하며 50미터를 달리는 시합이였는데, 순서가 되기 전 아빠가 '제발 엎어지지만 마, 덕근아'  말했다.

총성이 울리고, 나는 줄넘기를 하며 달렸다. 생각보다 줄넘기가 오래 걸리지 않아 앞서나가 기뻤다.

하지만 이내 엎어지고 말았다. 결과는 꼴찌 인가 꼴지에서 두번째인가 했다.

아빠는 엎어져 돌아오는 나에게 장난스레 웃어보이며 '마음이 급한만큼 몸이 따라오지 못한다' 라며 웃었다.

하지만 줄곧 괜찮다, 괜찮다 하였다. 모든 부모에게 그렇듯 다 귀여울 뿐인 모습이지만 그래도 난 그 순간이 참 싫었다.

내게 있어 운동회가 즐거운 가운데에서도 뜨거운 모래가 뭍은 피로 기억되는건

아마 이때 엎어져 생긴 무릎의 상처 때문일 것이다.



 이제 아빠는 더 이상 오토바이를 타지 않고, 엄마의 떡꼬치는 먹어본 지 오래다.

나는 더 이상 뚱뚱하지 않으며, 빠르진 않더라도 이제는 엎어지지 않고 잘 달린다.


 빨간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던 아빠의 뒷모습과 엄마의 맛있는 요리들. 그리고 환하게 웃던 나의 뚱뚱한 얼굴.

모두 '한 때'의 것들이 되었다. 여전한 것이라면 나는 아직도 몸보다 급한 마음에 여러번 엎어지길 반복하며 

그럴 때마다 참 그 순간이 싫다는 것이다. 아마 죽기 전까지 이것만은 그대로일 것 같으니, 너무 추억에 젖어 이렇게 글을 적을 필요는 없겠다.


 그렇게 나는 따스한 5월에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 이후로 내게는 수십 번의 5월이 있었고, 지금도 나는 한 달 후면 다가올 5월을 기다린다.

이번에 타슈켄트에서 맞을 5월에는 가까운 초등학교으로 가, 옛 그 행복을 다시 한번 느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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