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엔. 매튜는 국외자다.
즉 영화는 이사벨과 테오를 통해 60년대 프랑스의 혁명시기를 말하기 위해. 매튜를 국외자로써 사용한다.
테오는 분명, 60년 프랑스의 청년이다.
혁명 속에빠져 모택동의 사진을 보며 에릭클랩튼의 노래를 듣는.
그는 하지만 겁쟁이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어릴 때 부터 마주한 이사벨, 즉 프랑스가 익숙해져온 파시즘일 뿐이다.
이를 깨우는 것은 이자벨도 아닌 매튜다,
매튜는 이사벨과 섹스를 하고 테오와 우정을 나누지만 분명한 것은 그는 국외자다.
샴쌍둥이라고 일컫는 테오와 이자벨사이에 그가 들어갈 공간은 없다.
단지 매튜가 해낼 수 있는 것은
이자벨, 즉 프랑스가 익숙해져온 파시즘을 밖으로 꺼내어 표면 위로 들어올리는 것 뿐이다.
테오가 혁명의 시대로 나아가려 화염병을 들었을 때,
거기서 어쩌면 매튜는 영화에서, 아니 프랑스에서의 역할을 끝마쳤다고 본다.
이자벨 또한 하나의 엑스트라로 남았을 뿐.
결국 마지막 남는 것은 테오와 경찰들.
즉 혁명 후의 프랑스와 혁명 전의 프랑스이다.
분명 청춘은 역동하는 시기다.
역동은 길을 못찾기에 해매고 실수하며 억압한다.
하지만 그 청춘에 생기가 있는 것은 그들의 생기발라한 몸짓에 있고 그들이 나누는 사랑에 있다.
그러한 점에서 몽상가들은 분명 국외자들의 오마쥬 이상의 영화임에 틀림없다.